오래전 어느 PD는 “시청률표에 따라 매일 아침 사무실 분귀기가 맑기도 하고 먹구름이 끼기도 한다”고 말했는데, 시청률에 따라 프로그램의 수명과 PD의 능력 정도가 결정되는데, 어찌 그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매체, 다채널 시대가 본격화된 가운데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하는 게 어렵게 되면서, 방송사들은 시령률 1퍼센트가 오르고 내리는 것에 더욱 민감하게 되었다.
시청률은 존중해야 할 가치가 있는 건 분명하지만 모든 프로그램의 수명과 내용이 오로지 시청률에 의해서만 결정되어도 괜찮은 것일까? 미국 상업 텔레비전의 경영자들은 적어도 1950년대부터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다수 시청자’를 존중하는 편성 정책을 취했다. 그 결과는 1950년대 후반에 극명하게 드러났다. 주 시청 시간대 프로그램에 성과 폭력의 묘사가 난무했으며 대중의 문화적 취향을 하향 평준화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러한 다수 TV에 대해 사회적 비난이 빗발치자 텔레비전 방송사 경영진과 간부들은 문화적 민주주의 culture democracy를 내세워 그들의 입장을 옹호했다. 정치적 민주주의가 다수의 의사에 따라 지도자를 선출하고 국가적 중대사를 결정하는 투표제에 의해 가능하듯이 텔레비전도 문화적 민주주의의 원칙에 따라 신청률이라고 하는 시청자들의 투표 결과에 따라 프로그램의 내용을 결정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가 되느냐는 항변이었다.
1960년 5월 7일 애틀란타에서 개최된 미국여론연구협의회 연례총회를 겸한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대체로 문화적 민주주의가 대단히 교묘한 기만이라는 데에 동의했다. 그들은 시청률이 기존 프로그램들 가운데에서의 선택을 나타내는 것일 뿐 시청자의 의사를 반영할 수는 없다는 것을 지적했다. 또 텔레비전이라고 하는 매체 자체에 대한 소비 성향으로 인해 수동화된 시청자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거나 생각하길 실어한다는 강조했다. 또 시청률 조사는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의 호/불호를 묻는 것이지, 유익/유해를 묻는 건 아니라는 걸을 문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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