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지금은 속도 전쟁의 시대다. “속도는 서구의 희망”이라고 한 프랑스 철학자 폴 비릴리오 Poul Virlio는 이미 1970년대 후반에 “속도의 폭력은 법이 되었으며 세계의 운명이자 세계의 목적이 되어버렸다”라고” 했다. 결코 과정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특히 디지털 기술의 변화 속도는 너무도 빨리 그 속에 대처해야 할 IT 산업의 기업가들마저 한숨을 토해내게 만든다.
대중문화 역영에서 이런 속도의 변화를 잘 보여주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텔레비전이다. 텔레비전의. 속도 혁명을 견인한 요인은 많지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단연 리모컨이다. 1950년대 리모컨이 등장했을 때, 모든 이들이 리모컨의 주목적은 시청자가 잠들면서 텔레비전을 끄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리모컨의 가공할 위력을 조금이라도 짐작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리모컨의 독재’가 나타나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미국이나 일본에서 오랫동안 조사된 결과에 따르면 리모컨 때문에 한 프로그램을 다 시청하는 시청자 수는 크게 줄어들고 있다. 리모컨의 보급률과 높은 시청률을 얻는 프로그램의 비율은 반비례하는 경향이 있다. 리모컨으로 인해 광고 효과도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광고를 하는 동안 리모컨을 이용해 다른 채널로 도망가버리니 프로그램의 앞뒤에 광고를 내는 스폰서로선 이만저만 손해가 아니다.
PD들이 리모컨의 그런 영향력을 모를리 없다. 그래서 그들은 가능한 한 프로그램 전체에 걸쳐 팽팽한 속도감을 유지하기 위해 애를 쓰며 프로그램을 가능한 여러 코너로 짧게 나누고, 시청자들에게 티끌만큼의 정신 집중이라도 요구하는 불편을 주지 않겠다는 자세로 제작에 임한다. 그래서 요즘 텔레비전 오락 프로그램의 경우에는 진행자가 아예 채널을 돌리지 말아 달라고 사정하기도 한다.
그런 속도에 대한 강박은 청소년의 경우엔 더하다. 그래서 4분의 1을 뜻하는 쿼터리즘이라는 말도 등장했다. 어떤 일에 15분 이상 집중하기 힘든 현상, 즉 인내심을 잃어버린 요즘 청소년의 사고와 행동 양식을 일컬어 만들어진 말이다. 5초를 견디지 못하고 텔레비전 채널을 돌린다거나 하는 찰나적 감각주의를 지적하는 것이다. 복잡한 것보다 쉬운 것을 찾으며, 한 분야에서 15분 이상 대화하지 못할 정도로 지식이 빈약한 젊은 세대를 가리켜 쿼터족이라는 말로 생겨났다.
속도를 즐기다가 속도의 포로가 되는 역설이라고 할까? 전 세계적으로 느림 운동이나 느리게 살기 운동이 벌어지는 것은 그런 속도 위주의 삶이 너무도 피곤하기 때문일 것이다. 느림의 철학을 역설한 혜민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몇 백만 부 돌파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운 것은 마케팅의 힘도 크겠지만 바로 그런 삶의 피곤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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