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업∙취업∙창업∙연애∙결혼 등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청년들에게 치료비를 지원해 준다고 법안이 이미 발의되었다. 탈모에 따른 부담, 고통이 가중될 수 있는 만큼 시에서 탈모 치료 비용 부담을 덜어주자는 취지다. 실제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월 22일 서울시의회 제316회 임시회 3차 본회의에서 “청년 탈모인 경우엔 노년과 달리 하나의 질병으로 분류하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에 정부에서 어떤 형태로든 지원하는 것도 고민해볼만 하다”고 했다. 하지만 형평성 문제가 지적되었다. 여드름, 라식과 라섹 등 치료비는 어떻게 할거냐는 것이다. 과연 라식, 여드름 치료에도 세금을 지원해야 할까?
서울시의회 홈페이지에 올라온 조례 입법 예고 게시글에는 ‘공감을 받을 수 없는 조례’ ‘세금을 쓸데없는 일에 쓴다’ ‘가스요금과 전기요금을 지원해야 한다’는 댓글들이 달렸다. 다른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는 ‘서울로 주소를 옮기고 싶다’ 등과 같은 옹호 글도 올라왔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1년 병적 탈모증으로 진료를 받은 환자는 24만 3609명이다. 이는 4년 전(21만 4228명)에 비해 13.7%(2만 9381명) 증가한 수치다. 같은 기간 병적 탈모에 따른 진료비는 419억 9000여만 원으로 2017년 대비 46.6%나 증가했다. 탈모인들 중에선 특히 젊은 층의 비율이 높다. 연령대별로 살펴보면 30대가 22.6%로 가장 많고, 40대(21.7%), 20대(20%)가 뒤를 이어 20~40대가 탈모 환자 중 64.3%를 차지했다. 정치권이 청년층을 콕 집어 탈모 치료 지원에 나선 것은 이 같은 상황을 반영한 셈이다.
관련 업계와 의료계에선 건보공단 자료에 잡히지 않는 탈모인들까지 포함할 경우 국내 탈모인구는 10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건보공단 통계에 노화나 유전적 요인으로 탈모 치료를 받고 있는 이들은 제외돼 있다.
실제 탈모인들의 치료비를 지원하고 있는 곳도 있다. 서울 성동구는 만 39세 이하 청년을 대상으로 ‘청년 등 탈모치료비 지원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탈모 치료비 신청대상은 구에 주민등록을 두고 3개월 이상 거주(접수일 올해 3월 2일 기준) 중인 만 39세 이하 구민 중 탈모증 진단을 받은 자이다. 탈모 치료비 지원은 경구용 약제비에 한정하며, 본인이 선구매하고 구매한 금액에 대해 보전하는 방법으로 지원한다. 1인 기준 구매금액의 50%로 연간 20만 원 한도이다.
보령시, 연간 최대 200만 원까지 지원한다. 탈모 치료비 지원 대상은 보령시에서 1년 이상 거주하는 만 49세 이하 시민이다. 의과·한의과 등 의료기관에서 탈모 진단을 받으면 지원한다. 지원액은 1인당 최대 200만 원으로 신청 연도 2년 이내 진료기관 외래 진료비와 약제비 본인부담금 등이다. 신청서와 주민등록등본, 탈모증 진단서, 외래 진료비·약제비 영수증 등의 서류를 갖춰 보건소에 신청하면 된다. 전경희 보령시보건소장은 “탈모로 고통을 받는 시민을 돕기 위해 이번 사업을 추진하게 됐다”며 “(지원) 사업을 통해 시민이 심리적·경제적인 도움을 받고 사회구성원으로 건강하게 일상생활을 누리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김윤 교수는 탈모 치료에 대한 건보 적용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과거와 달리 꼭 생명에 치명적인 질환이 아니더라도 삶의 질과 관련돼 있다면 건보 적용을 검토해 볼 수 있는 시대가 됐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지자체 차원의 탈모치료비 지원은 형평성 문제가 생길 수 있어 건강보험을 통한 지원이 더 바람직하다”며 “건강보험 급여화를 어느 범위까지 확장할지는 시대에 따라 변한다. 유방암으로 유방 절제술을 받은 환자를 대상으로 한 유방재건술에 선별급여가 적용되고 있는 게 대표적”이라고 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국가가 지원해 주는 사회 복지 대상이 된다는 것은 사회적 위험이 큰 문제여야 한다고 말했다. "개인 문제를 지원해 준다면 마다할 일은 없겠지만 사회 복지라는 것은 대다수 사회 구성원이 공감하고 개인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워 사회가 나서서 해결해줘야 한다는 합의가 있을 때 가능하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어떤 현상을 놓고 발생 원인이 사회 구조적 요인인지, 생존을 위협할 정도인지,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등 따져봐야 할 부분이 많아 치열하게 논쟁을 한 뒤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며 "산적해 있는 사회 문제들 가운데 고민 없이 사회가 개입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복지부 관계자도 "지자체가 사회보장제도를 신설하거나 변경할 때 사회보장 신설변경협의회와 협의해야 한다"며 "정책의 타당성 여부, 건강보험공단 재정부담 등 다양한 항목을 놓고 제도를 다듬는 과정을 거친다"고 설명했다. 아직은 탈모에 대한 정부∙지자체 차원의 지원을 전면 확대하는 건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대다수를 이룬다. 한정된 자원을 더 시급하고 중요한 질환에 지원하는 게 맞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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