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리티 쇼는 원래 보통 사람을 출연시켜 그들의 사생활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치를 통해 시청자의 엿보기 심리를 충족시키는 형식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다. 생산자의 입장에선 무엇보다도 제작비가 싸게 먹힌다는 장점이 있다. 200년대 들어 전 세계가 리얼리티 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는 건 좋은데 출연자들이 자살하는 등 그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국내 방송도 외국 리얼리티 쇼를 수입 방영하는 한편 자체 제작해 방영함으로써 리얼리티 쇼 붐을 일으켰다. 이와 관련,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황상민은 “사람들이 진짜 관심을 가지는 것은 정치나 사회, 관습 등 거창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 자체다. 즉, 타인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특정 상황에서는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궁금한 것이다. 이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고, 내 마음이 드러나는 것이다. 과거엔 우리 속 동물들을 보며 내 모습을 발견했다면 지금은 리얼 프로 속의 ‘인간 동물’을 구경하면서 내 모습을 발견한다. 또 낯선 이성에 대한 유혹이나 극단적인 상황에서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는 출연자들을 보면서 평소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던 숨겨진 욕망을 대리만족하기도 한다”라고 분석했다.
리얼리티 쇼의 붐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곤 하지만, 한국은 모든 오락 프로그램이 사실상 리얼리티 쇼 코드를 취하고 있다. 다매체, 다채널 상황의 영향이 결정적 이유다. 케이블방송이 막무가내식 저돌성으로 기존 성역과 금기를 깨부수고, 여기에 인터넷이 2차 타격을 가하면서, 지상파방송은 상대적 품위를 유지하면서도 과거와 전혀 다른 혁명의 길에 들어설 수 있게 된 것이다.
근엄하기만 했던 아나운서의 ‘망가지기 경쟁’이 프로 근성으로 대접받기 시작한 게 그런 혁명의 상징적 현상이라 할 수 있겠다. 과거 방송의 성격과 금기로 여겨지던 것들 하나씩 깨나가는 데 가장 유리한 연예인은 개그맨이다. 그래서 바야흐로 개그맨의 전성시대가 열리고 있다. 아니 ‘전 연예인의 개그맨화’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는 게 옳겠다.
최근의 토코쇼는 사실상 리얼리티 쇼다. 과거의 토크쇼는 품위, 진지 코드로 일관해 리얼리티와 거리가 멀었지만, 요즘 토크쇼는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정도를 넘어서 스튜디오를 아예 퇴근길 포장마차로 옮겨 놓은 느낌이다.
리얼리티를 앞세운 직설과 독설은 힙합에서 노래로 상대ㅑ방을 비방하는 행위를 뜻하는 디스와 맞물리면서 청소년 문화로까지 번져나갔다. 다른 사람을 폄하하거나 비꼬아 공격하는 행위를 일컬어 ‘디스하다’고 표현할 정도로 디스가 청소년 문화의 한 풍경이 되었다.
그래서 앞으로 방송은 ‘위선의 제도화’를 완전히 멸망시키는 쪽으로 나아갈까? 우리는 진실을 빙자한 무례를 계속 즐기면서 견뎌내야만 하는가? 그렇진 않을 것이다. 위선이 나쁘기만 한 건 아니다.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예의와 배려의 본질은 위선일 수 있다. 예외와 배려조차 없는 ‘만인에 대한 만의 투쟁’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 방송은 곧 다시 지속가능한 위선 체계로 복귀했다가 다시 배격하는 왕복운동을 반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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