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이미 올린 푸마 브랜드 관련 피드 ‘푸마와 아디다스는 형제, 푸마의 미래’ https://newdawn1994.tistory.com/33 에서 학창 시절에 나이키, 아디다스 보다 푸마를 좋아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훗날 ‘푸마’브랜드에 더 빠지게 된 이유를 이번에 써볼까 한다.
토미 스미스(Tommie Smith, 1944년 6월 6일 ~ )는 미국의 전 단거리 달리기 선수로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200m 금메달리스트이다. 텍사스주 클락스빌에서 태어난 스미스는 어린 시절 앓았으나 이를 극복하고 고등학교 시절부터 농구와 미식축구, 육상 등 모든 스포츠에 두각을 나타내는 유망주였다. 1963년 새너제이 주립 대학교에 들어간 스미스는 육상에 전념하였으며 대학 시절에 13개의 세계 기록을 수립하는 업적을 이루었다. 육상 스타가 된 그는 칼로스와 사회학 교수 해리 에드워즈와 함께 인권을 위한 올림픽 프로젝트를 형성하여 인권 운동에 투신하였다. 그는 미국 올림픽 육상팀 대표로 선출되었지만 인권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주장하며 올림픽에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보이콧을 주창하기도 했다.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200m 결승전에서 스미스는 19.83초의 세계 기록과 함께 우승하였고 칼로스가 3위를 하면서 동메달을 수상하였다. 시상대 오른 미국의 흑인 선수 ‘토미 스미스’와 ‘존 칼로스’는 미국 국가가 울리는 동안 검은 장갑을 낀 주먹을 하늘로 뻗는 ‘블랙 파워 설투르Black Power Salute’로 흑인 인권 운동을 지지하였다. IOC는 그들의 행위를 올림픽에서 정치적 훼손으로 보았고, 둘은 메달을 박탈당하고 선수 자격을 박탈당했다. 올림픽 시상대에서의 그들의 용기 있는 행동은 흑인 인권 운동의 기념비적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얼핏보면 ‘푸마’와 전혀 관련이 없는 올림픽에서 일어난 일화 같지만 반전이 있다. 그들은 시상대에 오르기 전 ‘퓨마 스웨이드 스니커즈’를 시상대에 고이 벗어두고 검은 양말을 신은 상태로 시상대에 올랐다.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푸마를 홍보하기 위한 쇼였을까?
토미 스미스의 인터뷰를 옮겨 보자.
“모두들 올림픽 시상대에 신발을 신고 올라가지 벗어놓는 경우는 없었기에, 사람들은 그 행동의 미가 무엇인지 쉽사리 이해하지 못했죠? 그건 퓨마 홍보를 위한 게 아니었습니다. 검은 장갑을 낀 주먹과 동일하게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행위였죠. 모든 사람들에게 미국에 있는 흑인들의 빈곤한 삶 그리고 대부분의 제 흑인 동료들은 이러한 신발을 살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저는 신발을 벗고 양말을 신은 채 시상대에 올랐습니다. 그건 바로 제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그 전까지 수년간, 저는 다른 신발을 신고 단돈 1원의 후원도 없이 열두 개 이상의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그동안 저는 단 한 번의 도움도, 응원 편지도, 격려도 받지 못했습니다. 멕시코 올림픽에서 장대높이뛰기, 원반던지기, 그리고 투포환 선수들은 돈을 받고 신발을 신었죠. 그러나 흑인 선수는 아무것도 받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저는 달리기 위해서 트랙 스파이크 신발을 빌려야만 했습니다. 당시 저와 제 아내는 열 살짜리 아들과 사는 집세조차 감당하기 힘들었습니다. 저는 12개가 넘는 기록 보유자였지만 세차장에서 일을 하고 공병을 주워 매장에 돌려주며 아들의 우유값을 벌었습니다. 올림픽이 열리기 몇 달 전, 친구를 통해 ‘푸마’‘푸마’ 메시지먼트를 소개받았습니다. 저는 이러한 저의 경제적 어려움을 토로했고 무엇이 필요한지 이야기했죠. 그들은 저에게 ‘좋아요. 우리와 가족이 되어주신다면 우리는 당신에게 이런 것들 제공해 드릴 수 있습니다.’라며 저희 아들에게 꼭 필요한 특수 성분들을 포함한 시밀락-분유를- 주었습니다. 그 덕분에 아들은 세계적인 멀리뛰기 선수가 되었고, 마이크 파웰(1990년대 육상스타) 과 같이 뛰게 되었죠. 그때부터 저는 푸마와 신뢰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건 단지 푸마 제품의 품질 때문만이 아니라 그들이 제게 제공한 가치와 따뜻한 매너 때문입니다.
(2008년 6월, 폴 미켈Paul Miquel과 토미 스미스의 인터뷰 중에서, 프랑스 GQ 메거진)
그가 ‘푸마 스웨이드 스니커즈’를 시상대 위에 곱게 벋어 놓은 이유는 이러한 신발을 신을 수 없었던 당시 흑인들의 빈곤한 삶을 알리기 위한 퍼포먼스였던 것이다. 1970년대부터 푸마 스웨이드는 흑인 문화의 상징이기도 하다. 많은 스케이트보더들과 흑인 힙합 음악가들은 저마다 개성 있는 색깔의 스웨이드를 지금까지 신어오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그룹 GOD의 멤버였던 박준형 님이 애착하는 신발로 유명하다.
필자가 푸마를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 푸마는 나이키의 ‘자유’와 아디다스의 ‘안정성’ 이미지와 대변된 ‘저항’ 이미지를 마케팅으로 적극 활용했으며 스타급 선수와 스포츠 강국이 아닌, 전력으로 열세하거나 질 거 같지만 애착이 가는 팀을 지원하는 ‘언더도그(Underdog)’ 전략을 통해 마케팅해나갔다. 대표적으로 자메이카 육상선수나 아프리카 축구선수들을 계속해서 모델로 썼으며, 마치 스포츠 브랜드 언더아머가 ‘스테판 커리’를 지원해 거물급 농구 선수로 키운 것처럼, 전설의 육상 선수 우사인 볼트를 지원한 게 대표적이다.
멕시코 올림픽에서 스미스가 벗어 놓은 놓은 ‘푸마 스웨이드’는 검은색이다. 푸마는 저항의 이미지가 분명 있다. 내일은 매일 신는 나이키 범고래를 벗고 푸마 스웨이드를 신고 외출하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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