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데믹이 도래했지만 극장가엔 여전히 위기설이 나돈다. 관객 수는 분명 늘었지만 과거만큼의 회복세를 보여주진 못하고 있고, 그나마 성과들도 대부분 외화들이 가져감으로써 한국 영화가 위기를 맞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올해 1분기 한국영화 점유율이 29.2%에 그쳤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460만, 《스즈메의 문단속》이 530만 관객을 끌어모았고, 비교적 최근 개봉돼 대중적 성공을 거두고 있는 작품들도 《존윅 4》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같은 외화들이었다. 즉 이건 단지 코로나19 여파만이 아니라, 최근 개봉한 한국 영화들이 관객들에게 그만한 매력을 선사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영화는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2019년 <기생충>, 2020년 <미나리>에 이어 2021년 <오징어 게임>까지 한국 콘텐츠에 대한 전 세계적인 열풍은 일시적 현상이 아닌 중요한 흐름이자 트렌드”가 되었으며, 2022년은 “특정 작품의 일회성 성과가 아닌 한국 콘텐츠 시장 전체가 글로벌화되는 본격적인 시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한국 갤럽은 2007년부터 매년 말 그해를 빛낸 각 분야 ‘올해의 인물’을 발표하고 있다. 2007년에는 전도연이 49.7%로 1위에 올랐고 2008년에는 손예진(2위), 김혜수(3위), 전도연(4위)이 상위권에서 각축했다. 이후 여배우 기준 최고 순위는 2021년 윤여정의 2위다. 2009년 하지원 4위, 2010년 김혜수 7위, 2011년 김하늘 4위, 2012년 김혜수 3위, 2013년 김혜수 7위, 2014년 전지현 11위, 2015년 전지현 4위, 2016년 전지현 9위, 2017년 김혜수 12위, 2018년 김혜수 14위, 2019년 이하늬 10위, 2020년 김혜수 9위, 2022년 윤여정 4위를 기록했는데 최근에는 남자 배우의 영향력이 엄청나다. 드라마 중심에서 규모가 큰 대작으로 영화와 시리즈로 형태가 변화했기 때문이다.
이정재는 제작, 감독, 각본, 주연까지 도맡은 첩보 액션 영화 〈헌트〉를 선보여 호평을 이끌었다. 그는 1995년 드라마 〈모래시계〉(SBS) ‘백재희’ 역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이후 영화에 더 주력해 대중에게는 영화배우로 깊이 각인되어 있는 듯하다. 작년 하반기 넷플릭스 웹드라마 〈오징어 게임〉 주인공 ‘기훈’ 역으로 명실상부한 글로벌 스타 반열에 올랐고, 디즈니+의 새 스타워즈 시리즈 〈애콜라이트〉 주연으로 발탁돼 현재 촬영 중이다.
2위는 지난해 유일한 천만 관객 영화 〈범죄도시 2〉의 괴물형사 ‘마석도’ 마동석(18.8%)이다. 〈범죄도시〉는 실제 사건을 모티브 삼아 전체 8편까지 계획된 시리즈로, 마동석이 직접 제작·기획·주연에 나선 범죄 액션 영화다. 2017년 1편, 2022년 2편에 이어 최근 3편이 개봉했다. 그는 2016년 처음으로 ‘올해의 영화배우’ 10위에 이름을 올렸고, 2017년 2위, 2018년 1위를 차지하는 등 6년 연속 5위권에 들었다. 마블 영화 〈이터널즈〉에서 ‘길가메시’ 역을 맡아 할리우드로 진출했다.
3위는 송강호(13.5%)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영화 〈브로커〉의 ‘상현’ 역으로 제75회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고, 항공 재난 영화 〈비상선언〉의 형사 ‘인호’ 역으로도 관객을 만났다. 그는 2014년 〈변호인〉, 2015년 〈사도〉, 2016년 〈밀정〉, 2017년 〈택시운전사〉 등 영화마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인물을 연기해 왔고, 2019년 〈기생충〉으로 세계인에게 이름 알렸다. 2007년 이후 매년 조사에서 최다 1위(5회), 개봉작이 없는 해에도 최상위권을 지킬 정도로 팬들에게 두터운 신뢰를 받는 배우다.
4위는 윤여정(7.7%)이다. 그는 2021년 〈미나리〉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비롯해 유수의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했고, 위트 넘치는 소감으로도 세계인을 사로잡았다. 올해는 재일 한인 가족 80년 삶을 그린 〈파친코〉에서 노년의 ‘선자’로 묵직한 울림을 전했다. 1966년 TBC 3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이래 반세기 동안 드라마, 영화, 젊은이들과 함께하는 예능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수리남〉의 황정민과 〈헌트〉의 정우성이 공동 5위(6.5%), 〈비상선언〉의 이병헌(6.0%)이 7위, 〈공조 2: 인터내셔널〉의 현빈(5.5%)과 유해진(5.2%)이 각각 8, 9위, 그리고 〈범죄도시2〉의 악당 손석구(5.0%)가 10위다. 손석구는 올해 영화배우뿐 아니라 탤런트 부문에서도 10위권에 처음으로 포함됐다.
최근 영화산업은 구조적 변화에 직면했다. OTT 플랫폼의 등장은 극장 매출만으로 영화산업을 규정하는 관행을 뒤바꿔놓고 있다. 과거에는 '기획'과 '제작'이 주도권을 잡고 '배급'과 '상영'을 장악하는 방식이었다면 현재는 넷플릭스처럼 극장을 대신하는 새로운 상영 플랫폼은 거꾸로 상영이 주도권을 잡고 기획, 투자, 제작을 장악한다. 오랜 기간 유지해 온 영화 제작 시스템의 변환이라 할 수 있다.
영화산업의 정확한 현상을 파악하려면 수출이나 부가매출에 더해 온라인 플랫폼 통계까지 포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길복순' '정이' '20세기 소녀' 등의 한국영화가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온라인 플랫폼에서 개봉할 때 이를 둘러싼 산업구조를 어떻게 파악할지에 대한 정책적 고민이 필요하다.
OTT 플랫폼의 등장은 대기업 중심의 기획과 제작, 상영이라는 계열화, '1000만 영화'라는 한국영화 성공의 지표를 바꿔놓을 가능성이 높다. 이제 우리는 소위 대박을 터뜨려 매출을 독점하는 한두 편의 영화보다 제작비를 지원받고 적절한 이윤을 창출하는 다수의 영화를 보게 될 것이다. 그동안 기회를 얻지 못한 독립영화와 예술영화가 온라인 상영 플랫폼에 진입하는 기회도 늘어날 것이다.
코로나19와 OTT 플랫폼으로 대표되는 동시대 외부의 충격이 다시 한국영화를 자극한다. 어떤 전문가들은 위기를, 한편에서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고 있다. 분명한 건 한국영화는 이번 위기 역시 극복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다만 급변하는 영화산업의 구조에 대응하는 전략을 마련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을 뿐이다. 위기를 헤쳐나갈 한국영화의 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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