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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바머(Unabomber) 카진스키 사망, 테러리스트가 된 하버드 수학 천재

by 코즈모코즈모 2023.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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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과학기술과 산업사회에 반감을 품고 생면부지의 인사들에게 17년간 폭탄 수십 개를 보내 미국을 공포에 떨게 한 유나바머(Unabomber)’란 별명의 수학자 출신 폭탄테러범 테드 카진스키(81)가 감옥에서 사망했다. 미 연방수사국(FBI)은(FBI)는 10(현지시각) 노스캐롤라이나주 연방교도소 의료센터에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수감돼 있던 카진스키가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무고한 인명을 살상한 악랄한 테러리스트인데 일부에선 기술의 지배와 환경파괴를 내다본 천재 선지자라고 잘못된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물론 그는 분명 잔혹한 테러리스트이다. 그가 무려 17년이나 수사당국의 추적을 피해 테러를 일으키면서 소포 폭탄으로 3명을 살해하고 23명을 다치게 했다. 미국인들에게는 공포를 80~90년대 미국에선 우편물 수령 공포가 일었고, 단일 사건으로선 FBI가 역대 최고액의 수사 비용(5000만 달러)을(5000만 달러) 지출한, 최악의 지명수배 사건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유나바머라-불렸던-카진스키
유나바머라 불렸던 카진스키

시어도어 존 카진스키(Theodore John Kaczynski)는 1942년 5월 22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폴란드계 이민 2세대인 시어도어 리처드 카진스키와 완다 돔백 부부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들은 학교 개혁에 직접 참여할 정도로 교육에 대해서 열정적이었다고 한다. 소시지 공장을 경영하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카진스키는 지능지수가 160~170으로 평가될 정도로 천재로 불렸다. 그는 활달한 유년 시절을 보냈던 것으로 전해지며, 학교 성적도 아주 좋아서 학교 선생님들로부터 천재라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훗날 형을 신고하게 되는 그의 동생 역시 머리가 좋았는데, 수학자가 된 형과는 달리 노숙 아동을 돌보는 일을 하게 되었다.

 

16살에 하버드대 수학과에 조기 입학하고 미시간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25살에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조교수가 됐다. 하지만 그는 2년 만에 갑작스레 교수직을 사임하고 곧 몬태나의 집으로 돌아와 가족과 함께 2년 남짓 지냈다. 이후 1971년 몬태나 주의 숲 속으로 들어가 오두막에서 문명을 등진 채 혼자 생활하기 시작했다. 이는 그의 정치적 신념에 따라 산업사회의 문명을 멀리하고 원시적인 자급자족의 생활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전기와 수도도 없는 곳에서 사냥을 하고 채소를 길러 먹으며 살았다.

카진스키가 살았던 오두막

그렇게 수년 동안 고립생활을 보내다가 1978년부터 우편물 폭탄 테러를 벌이기 시작했다. 카진스키는 1978년 시카고 근처 노스웨스턴대에 보낸 사제 폭탄 소포가 폭발해 경비원에게 부상을 입힌 것을 시작으로 연쇄 폭탄 테러를 저질렀다. 이듬해에는 비행 중인 아메리칸항공 여객기 짐칸에 그가 설치한 폭발물이 터져 비상착륙해야 했다. 연방수사국 역사상 가장 많은 시간과 돈이 들어간 수사가 시작됐다. 그가 무려 17년이나 수사당국의 추적을 피해 테러를 일으키면서 80~90년대 미국에선 우편물 수령 공포가 일었고, 단일 사건으로선 FBI가 역대 최고액의 수사 비용(5000만 달러)을 지출한, 최악의 지명수배 사건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유나바머의-범죄가-제시된-전단지
유나바머의 범죄가 제시된 전단지

이후 언론은 테러범을 유나바머라고 불렀다. 유나바머는 대학을 뜻하는 영어 단어 앞글자 ‘Un’과 항공사를 뜻하는 단어의 앞글자 ‘a,’ 그리고 폭탄제조자 ‘Bomber’를 섞어 만든 FBI의 코드네임이었다. 그는 주로 대학과 항공사를 노렸기 때문에 대학(University)과 항공사(Airline)의 앞글자 ‘Un’과 ‘A’, 그리고 폭탄제조자(Bomber)를 묶어 ‘유나바머(Unabomber)’란 별명으로 불렸다.

 

폭발물에는 ‘자유 클럽’(Freedom Club)을 뜻하는 ‘FC’라는 문자가 쓰여 있었다. 카진스키의 폭발물 소포에 1985년 컴퓨터 상점 주인, 94년 광고회사 경영자, 95년 목재 산업 단체 대표가 목숨을 잃고 모두 23명이 다쳤다. 그때까지 연방수사국은 엄청난 압력을 받으면서 17년 동안 허탕을 치고 있었다. 곧 기회가 찾아왔다. 유나바머가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에 자신이 쓴 3만 5 천자짜리 선언문을 싣지 않으면 계속 테러를 저지르겠다는 편지를 보낸 것이다. 두 신문은 연방수사국과 상의한 끝에 글을 싣기로 했다.

유나바머의 소지품 경매

연방수사국은 유나바머가 약속대로 범행을 중단할 수도 있고, 그가 누구인지 단서를 확보할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고 선언문을 싣자고 했다. 수사를 이끌며 이를 결정한 사람이 현 법무장관 메릭 갈런드다. 카진스키가 ‘산업사회와 그 미래’라는 제목으로 두 신문에 실은 글은 결국 체포로 이어졌다. 그는 선언문에서 “과학은 인간의 진정한 복리를 아랑곳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질주한다”며,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살인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또 전기나 통신 수단 같은 “모든 기술 발전은 보통 사람이 더 이상 자신들의 운명을 결정하지 못하게 만들었다”며 정치인·경영자·기술자·관료들이 지배하는 세상에 대한 혐오를 쏟아냈다. 그래서 기술 전공 교수 등 현대문명을 이끄는 이들을 없애려고 했다는 것이다.

 

형과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못했던 그의 동생이 신문에 실린 선언문 내용과 형의 문체가 비슷하다며 연방수사국에 제보를 했다. 선언문은 그의 과거 글과 문체가 비슷하고 오자까지 같았다. 연방수사국은 오두막에 있던 그를 체포했다. 카진스키는 1998년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CNN에 따르면 가족과 변호인은 감형을 위해 그가 정신적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카진스키 자신은 “미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정신과 전문의 샐리 존슨 박사는 “편집증과 조현병을 앓고 있으나 재판을 받을 만한 정신적 능력을 갖췄다”는 진단을 내렸다.

 

현대문명에 대한 거부를 극단적으로 표현한 카진스키의 범행 동기도 특별한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천재 수학자였던 그의 범행 동기는 철학적 배경보다는 비뚤어진 사고방식 이상은 아니었다는 평가도 많다. 어릴 적부터 내향적이고 가족이나 학교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한 고립적 성향이 그를 유나바머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가족과 변호사는 정신적 문제를 강조했고, 결국 사형이 아닌 종신형이 선고됐다.

카진스키 사건을 다룬 미니시리즈 맨헌터:유나바머, 출처 : 넷플릭

유나바머 선언문과 그의 스토리는 영화와 넷플릭스 시리즈 등으로 제작됐다. 테러 피해자와 유족들은 그를 ‘악마’라고 비난하지만, 일각에선 사회 불평등 심화와 기후변화를 내다본 ‘예언자’로 추앙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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