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2018 F/W 서울 패션위크'에선 1990년대에 유행한 현진영의 '흐린 기억 속의 그대'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출시된 지 30년이 지난 운동화가 새삼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출시된 지 30년이 다 돼가는 음료가 인기를 다시 얻고, 50년대를 연상하는 복고풍 디자인의 가전제품이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다. 과거의 재발견의 시작처럼 느껴졌다.
뉴트로(newtro)는 2010년대 후반부터 과거의 문화가 새롭게 유행하는 현상을 뜻하는 대한민국의 신조어이다. ‘새로운’(new)과 ‘복고풍’(retro)의 합성어로 2019년 트렌드 키워드에 선정되었을 만큼 새로운 세대에게 큰 관심을 받고 있다. 과거의 것을 그대로 옮겨오는 것이 아니라 현대에 맞게 해석하여 재창조된 상태를 일컬으며, 이는 기존 레트로와의 차별성을 부여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 강력한 트렌드를 이끄는 주력세대가 젊은 층이라는 점이다. 복고라는 트렌드는 수시로 등장하고 사라지길 반복하지만, 이번의 트렌드는 새로운 세대가 주도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성신여대 교수 이향은 "기존의 복고 트렌드는 해당 문화 코드를 누린 중장년층이 주 소비층이었다. 그들의 향수에 소비하는 것"이라며 "지금의 10대 20대는 과거의 문화 코드를 경험한 적이 없음에도 과거에 유행한 물건이나 콘텐츠를 찾는 것은 그것들이 주는 색다름과 신선함 때문"이라고 정의했다. 한눈에 봐도 촌스럽고 오래돼 보이는 물건을 오히려 레어템으로 분류해 가치를 높이고 지난 시절 사라진 브랜드의 히스토리를 찾아내 새로운 문화로 재탄생시키는 것이다. 요약하면 뉴트로는 단순히 과거의 물건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적 감각을 더하여 재탄생시킨다는 데에 초점이 있다.. 뉴트로를 통하여 세대 간 공감대 형성이 가능한 것이다.
뉴트로 현상이 나타나게 된 원인을 분석해 보면 밀레니얼 세대가 과거의 것을 좋아하거나 동경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다. 경희대학교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이택광 교수는 대형 회사가 주도하여 천편일률적이던 문화계에서 대중은 과거의 것을 새롭고 신선하게 인식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또 세종대학교 공연·영상·애니메이션대학원 문현선 교수는 에너지를 어디에 써야 할지 알고 이미 에너지를 소진한 40~50대와 달리, 청춘은 넘치는 에너지를 가치 있게 쓰는 법을 몰라서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것을 찾는 데에 에너지를 쓸 수 있기에 뉴트로에 열광한다고 보았다. 뉴트로를 2019년의 ‘트렌드 키워드’ 중 하나로 예측한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김난도 교수는 뉴트로는 코로나19가 없었던 과거를 향한 그리움에 소비하기에 지속되고 있다고 진단하기도 하였다.
뉴트로 현상에 대한 비판도 존재한다. 중앙대학교 역사학과 장규식 교수는 뉴트로의 일환으로 일명 ‘개화기 문화’가 유행하는 것에 대하여 역사적 인식 없이 일제 강점기의 문화를 소비하는 것의 위험성을 지적하였다 일각에서는 뉴트로 명소가 된 지역이 전통을 상업적 콘셉트로만 차용할 뿐 기존의 정체성을 잃고, 기존의 주민들은 떠나게 되는 것을 걱정하기도 한다. 허름한 철물점과 오래된 제지 공장이 늘어선 좁은 골목 사이사이로 현대적 감성의 카페와 주점이 자리 잡은 서울의 을지로는 지금 어떤가. 한때 오래전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곳이지만, 밤마다 젊은이들로 물결을 이루었으나 지금은 거대 상업 자본이 몰려들어 역시 독특한 개성이 사라져 가고 있는 현실이다.
하지만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뉴트로 현상은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는 사람들이 다수다. 레트로의 본질이 기억의 공통분모에 있다면 뉴트로는 차별성에 정체성이 있다. 레트로가 많은 사람들이 공통된 체험과 기억에 바탕을 두고 소환된다면, 뉴트로는 남들이 외면하거나 미처 놓쳤던 대상에 주목한다는 점이다. 심지어 기성세대조차 그것을 간과하고 있을 때 자신들이 주체가 되어 부각할 때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낀다.
그런 성취감과 만족감을 오래 유지할 수 있을 때 뉴트로의 생명력도 길어지는 운명이다. 우리 대중문화의 축적성이 뉴트로를 가능하게 한 점도 있다. 뉴트로 세대는 팝송이나 제이팝 없이 한국대중가요를 듣고 성장한 세대다. 세계 속에서 활동하는 이른바 한류 스타들과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내며 성장한 이들이다. 때문에 한국의 방송 콘텐츠는 물론 대중문화전반에 걸쳐 스스로 거리낌이 없다.
새로운 세대는 지금의 정서와 감성으로 이해할 뿐이고 그것에 부합하면 문화적으로 수용한다. 오히려 문화적 수용이 늦은 것은 레트로세대일 수 있다. 옛날이 좋았다고 하면서 문화를 강박하거나 수동적 우월의식에 빠져든다면 꼰대로 규정될 것이다. 당연히 레트로에 함몰되는 것을 고민해야 봐야 한다. 앞으로 지속 가능한 뉴트로의 플랫폼을 만들어가는 것이 지향해야 할 태도인 것이다.
뉴트로로 일어난 현상
뉴트로는 소비 트렌드를 주도하며 유통업계의 판을 뒤흔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는 추억 속 물건이 된 과거의 국민 물병 ‘델몬트 유리병’이 젊은이들의 ‘핫템’이 되면서 2019년 한정 패키지로 재출시됐으며, 하이트진로는 1970~1980년대의 라벨 디자인을 복원·재해석해 출시한 ‘진로’ 제품으로 대박 행진을 이어갔다. 옛 감성을 새롭게 재해석한 상품들은 30~40대에게는 향수를 자극하고, 젊은 세대에겐 신선하고 새로운 제품으로 인식되며 전 세대에 통한다는 장점이 있다.
2018년 최고의 화제작인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연령별 관객 비중은 20,30대의 비중이 상당히 높았다.. 부모 손을 잡고 극장을 찾은 청소년들도 줄을 이었다. 새로운 세대들은 부모에게 당대의 그룹 퀸에 대해, 프레디 머큐리의 삶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단순히 기성세대의 추억 소비를 넘어 세대 간 교감과 세대 통합을 이끈 것이다. LP판과 카세트테이프, 할머니집에서 보던 유리병과 일력….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뉴트로의 힘. 세대를 잇는 오작교의 등장은 계속되고 있다.
탑골공원이란 신조어가 생겨났다. 유튜브를 통해 1980~1990년대 유행한 TV 쇼 프로그램인 , 등이 다시 실시간 재생(스트리밍)되면서 이 공간을 즐기는 이들이 채널을 지칭할 때 쓴다. 유튜브의 주 시청자인 1020세대가 오래된 1980~1990년대 문화를 보고 즐기면서, 노인의 성지로 일컬어지는 탑골공원에 이를 빗댄 것이다. 탑골공원은 서울 종로 3가에 위치한 공원으로 중장년층, 노년층이 주 유동인구다. 1020세대는 당시 유행가요를 보고 듣는 것을 넘어 유튜브 채널 안에서 실시간으로 서로 소통하며 온라인 세상에서의 ‘아고다’를 실현하고 있다.
‘힙하다’, ‘힙지로’, ‘힙패션’…. ‘힙’을 빼놓고 뉴트로를 논할 수 있을까. ‘힙하다’란 표현은 영어 ‘hip’과 ‘하다’를 합친 신조어다. 이 정체불명의 단어가 이제는 어디에 붙여 놔도 통용될 만큼 널리 쓰이고 있다. 히프는 엉덩이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영어권에서는 ‘최근의 사정에 밝은’이란 뜻의 ‘hep’과 유사하게 ‘최신 유행이나 세상 물정에 밝은’을 뜻하는 슬랭으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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